2026.05.29.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갈1:15-17)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바울은 왜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을까? 왜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을까? 혈육인 가족과 의논했다면, 사도들을 찾아갔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마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황당함과 염려, 그리고 선입견으로 대했을 것이다.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분별과 선택을 위한 묵상 가이드가 있다. ‘나를 알지 못하고, 나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조언하겠는지 곰곰이 묵상해 보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사사롭지 않고 보다 객관적인 입장이 될 것이다.
부르심의 길을 가려는 바울에게 아라비아는 오직 부르신 분 앞에 머물며 자신을 새롭게 하는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길을 걷는다. 나를 지으신 분, 나를 부르시는 분, 나를 보내시는 분, 나를 나 되게 하시는 분, 오직 그분에게서 들으며 걸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