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1.
언제쯤 전쟁의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왜 그토록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정당화하는 것일까? 갈등과 다툼의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이유가 있다. 특정한 일을 끄집어내면 분명 잘잘못이 보인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폭력과 같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받은 피해에 대해 복수하고 처벌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가 된 적이 있고 가해자의 보호자가 된 적도 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살펴보니 연필심이 박혀 있었고 짝꿍이 연필로 머리를 찍었다고 했다. 대학생이던 아이가 친구의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었다. 함께 살던 탈북 청소년이 급우의 얼굴뼈가 상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해 학교폭력 가해자의 보호자가 되기도 했다.
사고를 친 탈북 청소년의 가정사와 내면의 상처를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에게 무서운 폭력을 행사한 아이도 그렇게 성장한 비극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길을 찾아야 할까?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님은 어느 쪽에도 서지 않으신다. 나는 고향을 물으면 ‘지구촌’이라고 말한다. 탄식하는 마음으로 중간에 서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